'빵 점 맞으러 가는 시험인데 뭐하러 도시락까지 준비하노?' 라며 감사한 마음을 되돌려 말했었다.
고마웠다.
아침잠이 많은 아내가 불합격인지 알면서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도시락.
가방에 기본서 한 권과 계산기, 필기도구를 챙겨 넣고서는 부산 화명동에 위치한 산업인력공단 시험장으로 출발했다.
한 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시험장 입구에는 학원에서 홍보 나오신 분들이 학원소개지와 노트를 건네주며 시험 잘 보세요. 하면서 응원을 해주신다.
'나도 시험 잘 봤으면 좋겠습니다.'
건물 입구에 붙은 수험번호와 이름, 교실번호를 확인하고 해당 교실로 입장했다.
교실 칠판에 붙은 수험자 배치도와 그 안에 쓰여진 내 이름과 응시 종목
이윽고, 8시25분경이 되자 감독관 두 명이 교실로 들어온다.
한 분은 배치도를 보면서 응시자와 결시자를 체크하고, 한 분은 칠판에 응시회수와 시간, 주의사항, 발표일자등을 빼곡하게 기록한다.
시험 시작 전에 감독관은 시험시간과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시험 잘 보시라고 격려하며 나눠준 답안지의 감독 확인란에 사인을 해준다.
1교시, 아는 문제가 별로 없다.
수험서에서 본 듯한 살짝 익숙한 단어와 설계기준에서 봤던 어렴풋한 내용의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강재의 부식피로
수동말뚝
하천교량 고려사항
선박 부유물 충돌로 부터 구조물 보호방안
경사 압축장
얘네들 말고는 아는게 없다. 일단 적는다.
10문제 중에 5문제는 적었는데, 나머지 5문제는 뭘로 하나?
시공풍속기준 을 선택해서 나름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젠 적고 싶어도 적을게 없다. 정말 없다.
그렇게 4문항을 비워두고 1교시는 끝~
2교시, 큰 일 났다.
1교시 때 보다 더 모르겠다. 부정정 보의 스프링상수k를 산정하는 문제를 택해서 매트릭스 변위법으로 풀어나간다.어? 이게 아닌데... 어설픈 연습의 기억들이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풀긴 했는데, 자신이 없다.PC거더 횡만곡, 케이블, 철콘 문제를 손 댈 수가 없었다. (도저히 모르겠다.)
콘크리트 교량의 내구성 지배 인자
회전기계 기초의 진동특성과 진동해석 과정 을 선택해서 소설(?)을 썼다.
3교시, 총체적 난국은 이럴 때 쓰는 말일거다.
철콘 바닥판의 손상 종류, 억제 방안
교량 정밀안전진단을 위한 재하시험
PSC사장교의 특징을 강사장교와 비교 설명
이렇게 3 문항을 골라서 또 소설 썼다. (정말 괴로웠다.)
4교시,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글 쓰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교량 내하력평가방법
설계VE
곡선교의 거동과 설계시 고려사항
이렇게 3 문항을 적었다. 이 4교시에서 내가 기억하는 역대급 듣보잡 문제가 나왔다.
3차원 구조물의 변형율 불변량
주어진 것은 3x3행렬과 μ 뿐
난 핵교 댕길 때, 이런거 안배웠는데... 별 희안한 문제가 다 출제되네.
답안지를 제출하고 교실을 나서기 전
냉방설비가 없는 교실에서 8월의 더위에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던 감독관이 너무 애처로워
가방에 있던 손부채를 건네주고 교실을 퇴장했다.
이야~ 제대로 답안을 적지는 못했었도 시험을 다 보고나니 이렇게나 좋구나~
그로부터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난 9월의 어느 날 점수가 공개됐다.
첫 시험 20.5점
한 달간 매트릭스 변위법만 대충 보고, 논술을 읽는 둥 마는 둥 했었던 공부 이력
그러고도 20.5점을 받았으니, 채점위원들에게 너무 감사했다.
몰라도 이것 저것 써내려갔던 정성이 갸륵했나보다.
공부 안하고 첫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은 없으며,
공부 안하고 50점 이상 받는 사람은 아주 극극소수이고, (이 들의 합격 수기를 가능한 참고하지 마라. 도움 안된다.)
공부 안하고 첫 시험에 20점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이다. (10점대의 점수를 받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